소수자들에게 말하기 보다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옳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 멀티미디어와 관련하여 차이를 묶어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들어야 하는 것인지는 논의 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주의 깊게 들으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어도 자칫 소수자를 단순한 정보 제공자로 이용하게 되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또 논리정연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소수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배려하지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말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듣기가 중요하다. 소수자를 우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소수자의 특성을 유지하고도 사회적 불이익이 없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소통방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칠 필요가 있다. 의사소통의 비대칭성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본질인 것이다. 또 의사소통을 하는 중에 발생하는 소음은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서적 관여를 공적 영역으로 확장해야만 한다는 도덕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소수자의 목소를 제대로 듣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소수자를 한국어로 이야기할 것을 요구하고, 그들의 문화적인 측면을 무시하며, 소수자들을 볼거리로 환원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긍정적인 사례와 변화들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보이고 들린다고 해서 그들의 정치, 문화적 지위가 변한다고 할 수 없다. 결국 그들의 목소리는 자연스레 사라지고 미디어에서는 배제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제는 의사소통을 구성하는 개념과 의미들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수자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권리와 안정감인 것이다. 즉 목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지장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평화로움인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우리 누구나 객관,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이다. 따라서 소수자의 차이를 알고 암기하는 것 이외로 그 차이에 접근하여 비대칭성과 복잡성과 불규칙성에 자신을 노출하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소수자의 목소리 듣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오로지 듣는 것에서 끝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들의 지속적인 목소리와 생각을 듣고 그들과의 비대칭성과 복잡성과 불규칙성을 받아들이고 다르고 틀린 것이 아닌 당연함으로 인정하였을 때 그들은 우리와 다르거나 틀리지 않은 우리의 공동체 중 한 소속일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인 우리가 소수자들을 편견과 삐뚤어진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날은 소수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자세가 더욱 중요함을 인식하였을 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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